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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휴대전화 무선통신의 상용화는 1973년 9월 21일 미국 연방통신 위원회(FCC)의 승인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 후로 11년 만인 1984년 모토로라는 세계 최초의 무선 휴대폰인 '다이나택 8000X'를 출시하고 첫 휴대전화 통화를 이루어내었는데 그때부터 휴대전화의 상업적 시장에 판로가 열리게 된다.

한국의 개인 무선 휴대폰이 대중화된 시점은 대략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첫 타이틀을 갈아치우며 날개를 펼치던 1990년대 후반이었다. 그전에는 부유층이나 높으신 분들이 사업차 쓰던 넘사벽 사치품이었으니, 1988년도에 최초로 한국 출시한 제품인 '모토로라 다이나택 8000SL'의 가격은 일반 최저임금 노동자의 3년 치 급여나, 당시 포니 승용차 값에 맞먹는 가격으로 무려 460만 원에 육박했다고 전한다. 또한 지금 기준으로 성능을 살펴보면 그 비싼 돈으로 그런 걸 사냐며 혀를 내두를 수 있는데, 그때 그 휴대폰은 10시간을 충전해도 35분 만에 방전되었다고 하며, 무게는 790g에 크기(330x44.4x88.8mm)마저 9인치로 거대해 사용과 소지가 힘들어 일명 벽돌폰으로도 불리었다.

모토로라 다이나택 8000X -출처 위키백과

90년대 후반 이후 삼성 애니콜의 성공으로 개인 휴대전화의 보급이 대중화 되어 사라지거나 차츰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삐삐(무선호출기)와 공중전화 부스인데..

 

1983년 부터 시작된 무선호출 서비스 삐삐, 가입자 식별 번호로 015, 012 번호를 사용하던 시절로 10자리의 숫자로만 표현해야 했던 무선호출 숫자로 일명 '삐삐 언어'를 만들기도 했다. 


삐삐언어는 연락받을 전화번호 뒤에 숫자를 추가하며 감정을 표현했다.

8282(빨리빨리) , 7942(친구사이), 175(일찍와), 981(굿바이), 38317(LIEBE 사랑이라는 독일어), 9090(GOGO), 0404(영원히 사랑해), 0242(연인 사이), 1010235(열렬히 사모), 1004(천사), 1000024(많이 사랑해), 7171(친한친구), 9413(구사일생), 1414(식사하자), 3575(사무치게 그립다), 5825(오빠 미워), 9797(구구절절 할 이야기가 많다), 0027(땡땡이 치자), 8255(빨리와), 100(BACK), 2848(이판사판), 505(SOS), 5844(오빠를 사랑하는 사람), 486(사랑해)

정말이다. 40대 이상은 삐삐 숫자만 봐도 추억이 떠오른다.

삐삐는 단방향 통신으로 오직 호출번호만 확인 가능한 수신기였는 데, 삐삐가 수신되면 호출번호로 전화를 걸기 위해 집전화나 근처 집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줄을 서며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시도했던 기억이 나곤 한다. 하물며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내 기억으론 아이들 사이에서도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5000원 정도에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거 같다.

삐삐

당시 삐삐 메시지는 단순했지만, 주어진 숫자를 이용해 다양한 표현과 정성을 들여 보내졌었고, 어쩌면 지금처럼 빠르게 의미 없이 메시지를 확인하는 가벼운 느낌보다 '전화를 걸어줘 너와 만나고 싶다. 네가 그리워' 등..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활발했던 삐삐 전성시대에는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애잔함과 설레임, 인기 스타가 된듯 사람들이 나를 찾는 독특하고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1982년, 지지부진하던 공중전화 보급은 활기를 띄었다. 88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6년에는 카드공중전화기와 DDD 시외 전화기가 보급되었는데, 장거리자동전화를 말하는 'DDD(Direct Distance Dialing)'는 공중전화를 말한다. 가수 김혜림의 89년 1집 데뷔 타이틀곡 '디디디(DDD)'를 들어 보면 그 당시의 느낌을 조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듣던 감성 충만 노래라 개인적으로 이 노래가 너무 좋다.)

시내외자동공중전화기(D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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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공중전화 부스..

영화 속 공중전화에서의 씬, 때 아닌 소나기를 막아주는 공중전화 부스, 과거 길거리나 아파트 앞 공중전화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커다란 수화기를 붙잡고 몇 시간씩 친구나 애인과 떠들던 기억이 있는가? 또는 공중전화에 100원 넣어 한통화하고 30원 남았을 때 수화기를 내려 끊지 않고 다음 통화자를 위한 배려로 수화기를 공중전화 위에 올려뒀던 기억은 없는가? 동전을 삼켜버린 공중전화, 어느 순간 동전식에서 전화카드식 공중전화가 보급되고 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멋쩍은 미소로 기다리는 뒷사람들을 위해 퇴장하는 어른들, 혹시나 개인 전화 내용이 들킬까 문을 닫고 통화하던 시절, 뭔가 장을 본 장바구니 옆에 두고 열심히 적어온 수첩을 보며 통화하던 사람들, 늦은 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몰래한 연인들의 키스.. 공중전화에 얽힌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어가는 느낌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도 나니까..

 

하지만 삐삐와는 다르게 공중전화 부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99%의 개인 휴대전화 보급률을 갖은 세계 최강 통신강국이 되었다. 그로 인해 공중전화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휴대전화 보급으로 인해 공중전화는 애물단지로 전락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집 주위를 둘러보자. 둘러봐도 공중전화 부스가 예전보다는 확실히 줄었다 싶지만 몇몇은 존재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왜 그럴까?

 

1999년 15만 대 육박하던 공중전화는 휴대전화 대중화에 힘입어 이제는 전국에 3만여 대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사용자도 서울 기준 하루 평균 이용 건수가 4건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이익 없는 공중전화 부스를 계속 존치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전기통신사업법 2조 10항'에 나와있다.


전기통신사업법 2조 10항

"보편적 역무"란
모든 이용자가 언제어디서나 적절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전기통신역무를 말한다.

여기에 공중전화가 들어가고 통신 복지 제공 차원에서 국민의 기본적인 필수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와 더불어 무선 통신망이 단절되는 재난 상황에 대비하여 아날로그 통신망을 살려두는 의미도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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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의무적인 공중전화 운영은 통신사에게 거의 무수익으로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다행히 손실액은 통신 3사가 나눠 부담하며 국가가 일부를 보전해줘 운영하고 있다고 전한다.


공중전화 요금

1962년 1통화에 5원이던 공중전화 요금은 10원 단위로 인상되었으며, 2002년이 되자 70원으로 인상된 이후, 지금은 3분에 70원으로 유지 되고 있다.
 

멀리 외국은 관광목적 외에 활용도 없이 폐기되는 공중전화 부스, 요즘 한국은 공중전화부스도 스마트하게 진화 중이라고 한다. 코로나 때는 살균기를 설치한 방역소가 되기도 하고 대기 측정소나, 현금인출기, 전기 오토바이 충전소 등.. 시대 변화에 다라 쓰임새가 달라진 공중전화 부스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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