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이사 온 지 벌써 1년 4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체감상 3년은 넘은듯한데 1년 4개월 밖에 안됬다니 기쁘면서도 오묘하게 이상하다. 시골에 살면서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그중 시골 이웃의 정이 과하여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할 때가 있었다.
여느 귀농귀촌인은 마을 텃새로 부푼 희망을 접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난 이곳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다 다시 돌아온 케이스다 보니 모두들 날 잘 알고 있어 그런 것이 거의 없고 오히려 적응하기에는 더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응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인의 과한 정인데, 이곳의 예로 내 집에 자주 찾아와서 자신이 채취한 고사리 죽순 등을 가져다 주고 가시는 분이 계시다. 그분이 너무 고마워서 나도 텃밭에서 기르던 부추, 당귀, 방아잎, 깻잎, 오이, 상추, 호박, 수박, 참외, 고추, 방울토마토 등, 그 이웃이 방문하면 주곤 했는데.. 그 이웃분과 친해지고 나서 그분의 아들을 만났는데 경계성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뭔가 조금 그런 느낌.. 사람을 너무 잘 믿고 눈치가 없고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깊은 가정사에 대해 말을 하며.. 신기한 건 내 나이와 똑같고 그도 동네에서 또래 친구도 없다 보니, 난 이웃의 눈치를 알아채고 그녀의 아들과 친구를 맺긴 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몇 번 그녀의 아들과 만나면서 이 시골에서 그다지 같이 할만한 게 떠오르지 않아, 친구 접대용 내 작은 게임콘솔기를 바리바리 들고가 그의 집에서 같이 게임을 하면서 게임하는 방법도 알려주는데.. 사실 소귀에 경 읽기다. 하하.. 아무리 알려줘도 게임조작을 매우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옆에서 다독이며 같이 게임을 하니 그는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 집에 이른 아침마다 방문하기 시작했다. 시골사람들은 농사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 많아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곤욕스러웠는데.. 잠이 덜 깬 얼굴로 예의상 그를 만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잠을 더 이상 못 자고 내 하루 루틴이 깨져버려 하루 종일 피곤이 점점 쌓여 사는 일이 며칠간 반복되었다.
더군다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그는 할일없이 여지없이 찾아오고.. 난 텃밭에 비 철철 맞으며 배수로길 내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데... 하... 어쩌면 같이 게임하고 싶은 욕망으로 날 찾아온 듯하기도 싶고.. 그냥저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음료수와 과자봉지 쥐어주며 그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되도록 점심 이후에 보자고 말하며 대문이 닫혀있으면 외출하거나 내가 잠들어있는 거라고 날 깨우지 말라는 것도 정중히 말했다.
하지만 웬걸, 이제는 그의 엄마가 아침 일찍 잠긴 대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두명이 번갈아가며 내 아침을 깨운다. 난 샤워를 다 마치고 벌거벗은 상태로 몸을 말리는 중이었는데.. 그 이웃이 날 찾는 말을 듣자마자 헐레벌떡 옷을 빠르게 입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방문은 잠가져 있기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으니.. 마치 방문 입구 유리에 비친 그 이웃의 얼굴은 너무 공포스러웠다.
이해는 한다. 도시에서 온 젊은이가 뭐 하고 사는지, 잘 먹고 사는지, 밖에서 안보이면 궁금하기도 하고 깨물면 아픈 자신의 아들과 더 놀아주길 원하고 놀아주니 고맙다고 뭔가 주고 싶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러다가는 내 개인생활도 사라질 지경이다.
그 이웃에게 잠시 내 텃밭에 딴 오이를 주고 음료수도 챙겨주면서 난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오해하지 마세요. 전 이것저것 혼자 하느라 아침 잠이 많고 대문이 닫혀있을 때는 제가 쉬고 싶거나 잠을 자고 있을 때이니 되도록 방문은 자제해 주세요. 저도 개인생활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하"
그랬더니 그녀가 이해했는지, 그녀의 아들에게도 그렇게 전하겠다고 하며 자신의 집으로 가끔 놀러 오라고 한다. 아무튼 이웃은 과거 서로의 젓가락개수도 알만큼 이웃 간에 정이 넘쳤던 과거에 사시는 분일뿐이지, 그저 그녀의 행동이 이웃과 친해지는 길인줄 아시며 나쁜 의도는 없다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하여튼 이번일을 계기로 내 개인생활도 존중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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