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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인데요. 제가 사는 곳 근처에는 5.18 자유 공원이 있습니다. 항상 보는 장소 이지만 마침 행사를 해서 오랜만에 다시 가보기로 했습니다. 방문은 하였지만 행사는 진작 끝나버려 여차여차 포스트는 늦게 올리게 되었네요. 혹시 놓치시거나 시간이 아까우신 분들은 저와 함께 5.18 자유공원을 간단히 둘러보시겠습니다.

입구앞 비석

5.18 자유 공원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정권 찬탈을 기도하던 일부 정치 군인들의 강경진압에 맞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분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으로, 원래 위치에서 100m정도 떨어진 곳에 원형으로 복원, 재현된 곳입니다.

 

 

 

◆위치 :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평화로 13(치평동)

◆가는 방법 :

고속버스 - 광주 유스퀘어(광천터미널)터미널에서 하차, 순환01번 버스 시청가는 방향으로 탑승, 5.18자유공원 정류장에서 하차

기차 - 광주 송정역에서 하차, 소태 방면 지하철을 이용 김대중 컨벤션센터(마륵)에서 하차 5번 출구로 나와 직진, 김대중 컨벤션센터 뒷쪽 주차장쪽 건너편에 있음.

항공 - 광주 공항에서 하차, 근처 지하철까지 도보로 이동 후 지하철 이용 김대중 컨벤션센터(마륵)에서 하차 5번 출구로 나와 직진, 김대중 컨벤션센터 뒷쪽 주차장쪽 건너편에 있음.

5.18 자유 공원 안내 지도

입구 앞 비석 옆에는 '들불열사 기념비'가 있는데요.

들불열사 기념비

안타깝게 사망한 '들불야학 운동가 7인'의 모습을 새긴 북두칠성형 기념 조형물로 그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세워놓았습니다.

들불야학 운동가 7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기순(1957-1978) - 들불야학 창립 주역, 전남대학생 76학번으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5월광주항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들불야학을 직접 만든 운동가였습니다. 들불야학의 수학 강학, 전남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공장에 직접 취업하여 노동운동까지 하다가, 1978년 12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연탄가스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82년 윤상원과 영혼 결혼식을 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1950-1980) - 들불야학의 '사회' 강학,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중앙위원, 5월항쟁 중 항쟁지도부 구성을 주도하고 대변하였습니다. 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 총격전중 사망하였습니다. 82년 박기순과 영혼 결혼식을 했습니다.
박용준(1956-1980) - 고아로 성장하였고 YWCA신협의 간사로 일하고 있던 김영철 열사의 의형제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후 주민운동과 들불야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5월항쟁 중 '투사회보' 제작에 참여하였고 시민군으로 80년 5월27일 새벽 총격전 중 사망하였습니다.
박관현(1953-1982) - 들불야학의 '영어' 강학, 19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고 민족민주화성회를 주도하였습니다. 1982년 7월부터 '5.18진상규명, 재소자 처우 개선'을 외치며 40일간의 옥중 단식투쟁을 벌이다 운명하였습니다.
신영일(1958-1988) - 들불야학의 '역사' 강학, 박관현과 함께 40일간의 옥중 단신투쟁하였고 다행히 병보석으로 출소했습니다. 그후 '전남 민주청년 운동협의회'를 창립하였고 민족,민주 운동에 헌신하다 과로로 운명하였습니다.
김영철(1948-1998) - 광주 서구 광천동에서 주민운동을 하였습니다. 들불야학의 '생활' 강학, 항쟁지도부 기획실장으로 80년 5월27일 새벽 총격적 끝에 체포,투옥되어 고문후유증으로 18년간 정신질환을 앓다가 운명하였습니다.
박효선(1954-1998) - 전남대 국문학과 출신으로 들불야학의 '문화' 강학, 5월항쟁중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으로 시민궐기대회를 주도하였습니다. 극단 '토박이'를 창단하여 '금희의 5월' '모란꽃'등의 창작공연을 하였습니다. 98년 9월 향년 44살에 간암으로 운명하였습니다.

들불야학 문집

먼저 '자유관'부터 찾아가 볼까요. 잔디 광장앞에 있는 곳입니다.

자유관 앞 잔디광장

시간이 늦어서 어서 들어가 봅니다.

자유관 입구
자유관 내부

코로나로 인해 손소독 후 방문자 내역을 작성하고 주위를 둘러 보다 영창 재현 모형을 봅니다.

5.18영창 내부 재현 모형

그리고 홍보 책자가 많았지만 내가 방문한 시간은 곧 문을 닫을 시간이라 볼시간이 없었어요. 역사체험 잡지 하나 가져가고 바로 들어가봅니다.

자유관 홍보잡지

이제 내부로 더 깊히 들어가 봅니다. 투명 판에는 5.18이 시작되기 전부터의 역사 타임라인을 볼수 있습니다.

역사 타임라인

원형 복도를 들어가면 연사적 사건, 맨주먹의 저항, 죽음과 부활, 천년의 빛 5.18이라는 주제의 컨텐츠를 볼수 있습니다. 먼저 눈길을 끄는 판화는 제 어릴적 어디에선가 보았던 느낌이 생생합니다.

계엄군의 주요 이동 상황

계엄군 투입 이유와 5.18 당시 계엄군의 이동경로도 볼수 있습니다.

바닥에는 당시 시민들을 폭도로 내몰아간 계엄군들의 사진들이 붙어있습니다. 밟으면서 가야 제맛일까요.

포교령

비상 계엄 시행지역을 대한민국 전지역으로 변경함으로 계엄사령관이 지시한 포교령입니다.

민주수호전남도민총궐기문

1980년 5월21일 전두환에 대한 전남도민총궐기문입니다. 전두환의 공수특전단이 광주 시민을 위협하기 시작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그당시 상황이 짐작이 갑니다.

그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주검도 보이며 기타 5.18때 광주 시민들의 활약과 계엄군의 학살에 대한 내용이 보입니다.

5.18 소개영상

중간 지점에 캄캄한 작은 영상실이 있는데요. 들어가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영상이 자동으로 방영됩니다.

당시 시민군이 무자비한 계엄군과 맞서기 위해 사용하던 칼빈소총과 M16소총도 전시되있고,

기타 옷과 진압봉,

5월 21일 거리에 나오지 말고 집안에 있기를 원하며 광주 시민에게 경고하는 계엄사령관, 그리고 전두환의 광주 살육작전을 비방하는 문서,

The Guardian & korea Zeitung

영국 The Guardian와 독일주간지 korea Zeitung의 광주 계엄령에 대한 기사

한국일보

5월27일 한국일보의 미국소식에 몰래 등장한 광주의 현장 사진

희생자를 덮었던 태극기

5.18 민중 항쟁 당시 희생된 사망자의 시신을 덮었던 것으로 망월동 구묘역에 매장될 때 함께 뭍혔다가 1997년 희생자들을 5.18 묘지로 이장하면서 햇빛을 보게 된 태극기입니다. 피얼룩은 그때의 참옥함을 일깨워줍니다.

5.18 광주 민중항쟁은 부당한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 저항으로 출발하였고 자치공동체의 형성 및 정의 실현을 위한 자기 희생과 반인륜적 학살에 저항하는 세계적 인권운동으로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한 15분정도면 다 관람할수 있어요. 그렇게 마지막 타임라인을 보며 자유관을 빠져나옵니다. 다음 이시간에는 법정, 영창 시설 체험을 해보겠습니다.

 

2020/06/28 - [정보 & 상식]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라. -법정, 헌병대, 영창 체험-

2020/05/17 - [정보 & 상식] - 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배경과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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